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답이 안 나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는데 막상 말하려면 머뭇거리게 되고, 누군가 거창한 답을 기대하는 것 같아 사소한 즐거움은 말하기도 부끄럽다. 결국 “잘 모르겠어요”로 대화가 끝난다.

이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의지 부족이나 자기 탐색 부족이 아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 짜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어떤 직업을 좋아하는가”를 묻는다. 그런데 직업은 명사고, 명사로는 자기를 찾을 수 없다. 자기는 형용사로만 잡힌다.

이 글은 내가 원하는 일을 어떻게 다르게 찾아야 하는지, 칼 융의 페르소나 개념·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을 가로질러 한 자리에 놓고 정리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어떻게 끌어당김의 진짜 출발선이 되는지도 함께 짚는다.

원하는 것을 못 찾는 진짜 이유 — 명사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뭘 좋아하니?”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답이 모두 명사이기 때문이다. PD, 작가, 개발자, 디자이너, 의사, 컨설턴트. 직업 명함의 이름들이다.

문제는 이 명사들이 우리에게 도착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미디어·드라마·인터뷰·SNS를 통해 화려한 이미지와 함께 패키지로 들어온다. 그래서 머릿속의 “좋아하는 일”은 이미 거창하고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채로 떠오른다.

이 거창한 명사 앞에 자기의 사소한 즐거움 — 다이어리에 줄 그어가며 정리하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차근차근 설명할 때의 뿌듯함 — 을 갖다 대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이게 뭐 좋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나.” 사소한 것을 깎아내리고, 거창한 것은 도달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자기를 찾는 첫 번째 작업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다시 짜는 일이다. “어떤 직업을 좋아하나”가 아니라 “어떤 순간 기분이 좋은가”를 물어야 한다.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 핵심 가치라는 보이지 않는 변수

“어떤 순간 기분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 떠오르는 그 느낌이 바로 핵심 가치다. 한 사람의 가장 깊은 만족이 어떤 결에서 나오는지를 가리키는 내면의 좌표.

핵심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복잡한 것을 깔끔하게 정리했을 때 쾌감을 느낀다 — ‘명료’가 그의 핵심 가치다. 어떤 이는 어제 모르던 것을 오늘 알아냈을 때 살아있다는 감각이 든다 — ‘성장’이 그의 자리다. 어떤 이는 자기가 한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신호가 도착할 때 뿌듯하다 — ‘기여’가 그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단어다.

흥미로운 건 핵심 가치가 거의 직업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명료’가 핵심 가치인 사람은 PD가 되어도, 데이터 분석가가 되어도, 교사가 되어도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결이 핵심 가치와 맞느냐가 만족을 결정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이란 결국 핵심 가치를 자주 깊이 경험하게 해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정답이 아니라 도구다.

약점 보완보다 강점 발휘 —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

20세기 후반의 심리학은 한 가지 큰 전환을 겪었다. 그 이전의 심리학이 주로 사람의 결함·트라우마·약점을 다뤘다면, 긍정심리학은 사람이 가진 강점·덕성·만족을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학자가 마틴 셀리그먼이다.

셀리그먼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사람은 자기 약점을 보완할 때보다, 자기 강점을 발휘할 때 훨씬 더 큰 행복과 몰입을 경험한다. 한국 사회는 약점 보완에 익숙하다. 시험 점수가 떨어진 과목을 더 공부하라고 배우고, 못 하는 영역을 평균까지 끌어올리라고 학습된다. 그 결과 자기 강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사람이 많다.

셀리그먼이 말하는 “대표 강점”이 곧 핵심 가치다. 자기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노력하지 않아도 거기 있는 것, 그것을 쓰고 있을 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그것. 자기를 발견하는 작업은 그래서 약점 진단이 아니라 강점 채집이다.

페르소나가 진아를 덮을 때 — 칼 융이 본 자기 상실의 메커니즘

그런데 왜 우리는 자기 강점을 모르게 된 걸까. 답은 칼 융의 한 개념에 있다. 페르소나(persona).

페르소나는 어원적으로 고대 그리스 연극의 가면을 가리킨다. 칼 융은 이 단어를 빌려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쓰는 모든 사회적 가면을 통칭했다. 부모님 앞에서의 착한 자녀, 학교에서의 성실한 학생, 회사에서의 유능한 사원, SNS에서의 매력적인 자기. 이 모든 것이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다.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인정받기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장치다. 문제는 가면이 진짜 얼굴을 덮어버릴 때 시작된다.

페르소나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정답은 뭐지”, “어떻게 행동해야 칭찬받지”, “사람들이 뭘 기대하지”라는 외부 지향의 질문이 머릿속을 채운다. 시리즈 6편 [우파니샤드]에서 다룬 “마야의 베일” — 진짜 자기(아트만) 위에 덧씌워진 거짓 자기 — 가 정확히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타인의 기대를 읽는 데는 전문가지만, 자기 마음을 읽는 데는 초보자가 된 상태.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매우 흔한 풍경이다.

핵심 가치를 찾는 3단계 —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하는 법

페르소나의 목소리를 살짝 비키고 진짜 자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장 검증된 작업은 다음 세 단계다.

① 사소하게 기분 좋았던 경험 한 가지 적기
오늘 하루 중 아주 작은 한 장면을 떠올린다. 친구의 복잡한 고민을 차근차근 풀어주었을 때, 어수선한 책상을 정리한 후의 그 감각, 모르던 단어 하나를 새로 알았을 때, 누군가가 내 한 마디로 안심하는 표정을 봤을 때. 거창할수록 안 된다. 사소할수록 진짜에 가깝다.
② 그 경험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정의하기
“좋았다”로 끝내지 않는다. 그 좋음의 결이 어떤 것이었는지 한 단계 더 들어간다. 보람? 뿌듯함? 후련함? 안도? 짜릿함?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붙이는 작업 자체가 자기를 정직하게 만든다.
③ 그 감정에서 핵심 가치 한 단어 뽑아내기
복잡한 것을 깔끔하게 만들었을 때의 뿌듯함이라면 → ‘명료’. 누군가의 짐을 덜어주었을 때의 보람이라면 → ‘기여’. 어제 모르던 것을 알게 된 후련함이라면 → ‘성장’.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때까지 줄인다.

이 작업을 몇 주 동안 반복하면 자기 핵심 가치 2~3개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자기 자신은 자기를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은 어떤 자기 테스트보다 정확하다. 시리즈 11편 [정화가 안 되는 이유]에서 다룬 검열 없는 글쓰기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작동하는 작업이다.

Will이 아닌 Must부터 — 인생의 진짜 작동 순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고, 그걸 위한 역량을 키우고,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은 줄여라.” 자기계발 콘텐츠가 가장 자주 권하는 흐름이다. Will → Can → Must.

실제 인생은 거꾸로 작동한다. Must → Can → Will의 순서다.

Must · 해야만 하는 일
돈을 벌어야 해서, 사회에 진입해야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처음 시작하는 일.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닌데도 우리 대부분의 출발점이다.Can · 할 수 있는 일
Must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성과가 나오고 능력이 인정받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해야 했던 일에서 점차 “이건 내가 좀 한다”는 영역이 생긴다.

Will · 하고 싶은 일
Can이 충분히 쌓인 후에야 비로소 “이걸 더 하고 싶다”, “이쪽으로 더 가고 싶다”는 진짜 욕망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피아노 학원에 끌려가서(Must) 어느 날 칠 수 있게 되고(Can) 대회에 나가고 싶어지는(Will) 어린아이의 경로가 인생 전체에서 반복된다. 처음부터 Will이 안 보인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Will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자기 발견의 진짜 작업은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Must 안에서 자기 핵심 가치를 의식적으로 살려가며 일하는 것. 그러다 보면 Can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어느 시점에 Will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몰입 — 내가 원하는 일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였다

자기 핵심 가치를 알고, Must에서 Can으로 옮겨가는 사람에게 결국 도착하는 자리가 있다. 헝가리계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평생을 연구한 그 자리, 몰입(flow)이다.

칙센트미하이의 발견은 명료하다. 사람은 자기 역량과 과제의 난이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가장 깊은 만족을 경험한다. 난이도가 너무 낮으면 지루하고, 너무 높으면 좌절한다. 둘 사이의 좁은 영역에서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 상태가 일어난다.

게임이 그토록 빠르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레벨에 맞춰 몬스터 난이도를 정확히 조정한다. 그래서 몰입이 자동으로 발생한다. 일에서도 같다. 자기 핵심 가치에 맞는 영역에서, 적절히 어려운 과제와 만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누구나 몰입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사람은 한 가지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원하는 일”은 어떤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이 몰입 상태 자체였구나.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머릿속의 모호함이 한 문장으로 또렷해지는 그 순간을 자주 경험하고 싶었던 것.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떤 문제 앞에서 답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살아내고 싶었던 것. 직업은 그 상태에 도달하는 여러 통로 중 하나일 뿐이다.

끌어당김의 출발선이 바뀐다

이 글에서 정리한 자리는 알짜배기 시리즈 전체의 가장 앞단에 놓이는 작업이다.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려면, 먼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핵심 가치를 모른 채 시작하는 끌어당김은 어딘가에 도착해도 비어있다. 통장에 돈이 들어와도, 명함에 직책이 채워져도, “이게 내가 원했던 건가” 싶은 공허함이 따라온다. 그건 끌어당김이 실패한 게 아니라, 타인의 Will을 자기 것으로 착각해서 끌어당긴 결과다.

자기 핵심 가치에서 시작한 끌어당김은 결과가 모양은 작아도 깊다. 어떤 자리에 도착하든 그 자리에서 자기다워질 수 있다. 사소한 한 장면에서도 충분한 만족이 일어난다. 시리즈 5편 [무의식 정화]가 다룬 “결핍의 진동이 아니라 충만의 진동에서 송출되는 신호” — 그 자리의 진동을 만드는 게 사실은 핵심 가치다.

오늘 하루의 작은 한 장면, 기분이 좋았던 그 사소한 순간을 떠올려보자. 거기에 자기 진짜 모습의 한 조각이 들어있다. 그 조각들을 모으는 것에서, 모든 끌어당김이 다시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보물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만족을 정직하게 적어가며 한 걸음씩 만들어가는 인고의 과정이다.

※ 이 글은 칼 융 분석심리학의 페르소나(persona)·자기(Self) 개념,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 Must-Can-Will 프레임을 종합해 정리한 인사이트 칼럼이다. 직업 선택이나 진로 결정의 전문적 카운슬링을 대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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